[단편] 선산의 멧돼지

조회 수 1722 추천 수 0 2014.04.02 17:4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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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집안의 장손으로 온갖 제사와 제사와 제사를 지내야한다.

(현조할아버지 - 첫째 / 고조할아버지 - 첫째 / 증조할아버지 - 첫째 / 할아버지 - 첫째 / 아버지 - 첫째 / 나 - 첫째)

우리집이지만 이런 집이 아직도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 집안에는 대대로 쓰는 선산이 둘 있는데

초대~16대 까지 모셔진 선산은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잃어버렸고

17대~현대 까지 모셔진 산이 남았다.

때는 초목이 우거지는 1999년 더운 여름 경북의 선산이었다.

우리집은 서울로, 선산이 있는 경북까지 가기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선산 아래에 있는 마을의 염소치는 할배한테 20만원씩 주고 벌초를 부탁했지만

벌초해주시던 할배가 98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99년까지 선산을 1년간 방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99년 아버지께서는 선산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며 집안에서 친척들을 모아서 직접 내려가게되었다.

나와 아버지,4촌 할배둘(친할아버지 둘째, 셋째동생), 6촌 할배,7촌 아재 둘(6촌 할배의 아들들) 이렇게 7명이 벌초를 하고 오기로하고

선산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사시는 6촌 할배의 집에서 가져온 예초기 하나와 낫 몇개, 경운기 한 대를 몰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항상 벌초가 끝나고 길을 내놓은 쉬운 산행만을 하던 우리집안 사람들에게

허리까지 자란 풀숲을 헤치고 길을 내면서 산을 오르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풀을 다 베어내고 길을 내놓았더라면 묘가 보이기 시작하는 산허리까지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었지만

쓰러진 나무도 치우고 풀도 베어내고 하면서 올라가는 것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평소라면 다 오르고도 남았을 시간인 2시간정도 지났을 무렵, 우리는 선산과 마을의 중간쯤에 위치한 염소치던 할배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초가집에 지붕을 슬레이트를 덧대고, 바로 옆에 붙은 작은 축사에 염소를 치며 산아래에 고구마 밭을 일구던 할배가 살던 집이었다.

할배는 하루에 한두번씩은 마을로 내려와 마을 사람들과 담소도 나누고 이따금씩 염소나 고구마를 팔러오기도 했었는데,

보름이 지나도록 할배가 오지않자 이상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봤고, 할배는 집안에서 죽어있었다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할배의 시신을 수습해주고, 무연고자인 할배는 화장해서 집터에 뿌려주었다고 했다.

할배가 기르던 채 10마리도 되지않는 염소는 할배가 밥을 주지 않자, 낡은 축사 문을 부수고 산으로 도망쳐 야생동물이 되었다.

그런 할배의 집은 1년간 방치된 것 치고는 처참할정도로 박살이나있었다. 집이 무너져서 할배가 자다가 깔려죽었다고해도 믿을 정도였다.

흙으로 바른 벽을 빼고 축사와 천장은 죄다 무너져 깨져있었고, 아궁이가 있던 부엌자리는 벽도 다 허물어져 가마솥이 얹힌 아궁이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마치 태풍이라도 쓸고간 듯한 모습이었다. 이를 보고 최고 연장자인 6촌 할배가 말하셨다.

"이래서 사람 손길이 중요한거다. 고작 1년 방치했기로서니 사람 살던 곳이 이렇게 폐허가 되버렸지 않느냐. 우리도 어서 올라가서

조상님들께 죄를 빌자꾸나" 이런 내용이었던거 같다.

염소치기 할배 집을 지나고 얼마나 더 지났을까, 산허리에 나무를 다 베어내 볕을 잘 들게한 묘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녘에 이른 아침밥을 먹고 출발한 우리는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에야 묘자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1년간 방치된 묘자리는 의외로 훼손된 곳은 거의 없었다. 차례가 끝나고 음복하고 남은 음식을 맷돼지가 파해친 자리만

몇군데 있었고, 풀이 수북하게 자란점만 제외하면 특별한 것을 없어 보여 우리는 해가 지기전에 벌초를 마치고 산을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우거진 풀을 잘라내다 보니 묘 사이에 반아름정도의 소나무가 쓰러져있었다. 장정이(할배가섞였지만) 7이나 되었지만,

이 소나무는 위치가 애매하니 꺼내기가 쉽지 않았고, 우리는 일단 벌초만 끝내고 내일 사람들 몇을 데리고 올라와 같이 치우기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와 6촌할배의 집에서 저녁을 보내고, 다음날 우리는 다시 산으로 향했다.

어느 시골 마을이나 다 똑같겠지만, 젊은이 셋 보내준다던 6촌 할배네 동네 이장은 50대 할배 셋을 보내주었다.

할배들은 전기톱 하나와 엽총을 두 정 가져왔는데, 산에 멧돼지가 있어서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이 엽총은 유해조수(주로 까치)를 잡는데 쓰던 총으로, 그 당시 농촌이면 한두정은 있었다.)

나는 맷돼지를 새잡는 총으로 잡을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지만, 맷돼지도 끽해야 돼지인데 설마 달려들겠냐 싶은 마음에 별걱정도 않고 있었다.

새잡는 산탄총도 총이라고, 그래도 총이 있으니 괜시리 든든하고 은근히 맷돼지가 나타나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을 챙겨먹고 산을 오른 우리는 전날 닦아놓은 길을 따라 1시간만에 묘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분명 어제 돼지가 파헤쳐놓은 구멍을 다 매우고 떠났는데, 하루만에 몇군데에 더 구멍이 생겨있었다.

6촌 할배가 쓰글놈의 돼지새끼가 1년 방치했드만 자기땅이라고 땅을 파놨다며 어서 나무를 치우고 차례라도 지내서

사람냄새를 좀 남겨야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가져온 전기톱으로 나무를 토막내서 치우고, 순조롭게 마무리를 끝냈다.

일을 다 처리하고 사람냄새를 좀 남겨야 한다는 할배 말에 우리는 볕도 잘들고해서 한숨자고 일어나기로 했다.

-아무리 우리 조상님 산소라지만 무덤가에서 잘생각을 했다니 지금 생각하니 좀 이상하긴하다-

한 삼사십분쯤 지났을까, 별로 자고싶지 않았던 나는 고사리를 캐고 있었는데. 멀리서 동물소리같은게 들렸다.

설마 10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는데 뭐가 나오겠냐고 생각한 나는 무시하고 고사리를 마저 모으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갑작스래 고함소리가 들렸다. 마을에서 도와주러온 할배가 소리친거였다. "저거이 맷돼지아녀?"

산소 뒤의 우거진 나무 사이로 맷돼지 한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돼지의 상태가 이상했다.

정상적인 돼지같으면 사람눈에 띄는 일도 잘 없을 것인데, 여기엔 10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맷돼지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나는 멧돼지를 보고 약간은 실망했다. 집에서 키우는 돼지보다도

작은 몸집에, 그냥 털만 빳빳하게 서있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허리까지도 안오는 사이즈였다.)

할배들은 혹시 몰라 가져온 엽총을 꺼내들었고, 아버지는 사람이 이래많은데 덤벼들진 않을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나는 내심 총을 쏘는 상황에 대한 환상이 이뤄진것에 흥분해 맷돼지가 덤벼들어 주기를 기대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내 헛된 소망이 이뤄진 것인지, 맷돼지는 우리를 향해서 뛰어오기 시작했다.

할배들은 오냐 죽고싶으면 죽여줘야지라며 총을 쏴갈겼고, 20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던 맷돼지는

TV에서 보던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움찔움찔거리며 피가 좀 날뿐, 살이 터져나가거나 그러진 않았다.

총을 쏜 할배들은 당황했지만, 베트남에 파병갔다가 살아돌아온 4촌 둘째할배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4촌 할배는 순식간에 동네 할배의 총을 빼앗아들더니 그대로 멧돼지를 후려쳤다.

말이 새잡는 총이지 그래도 총은 총이라 4kg정도는 나가는 엽총은 거의 몽둥이나 다름없었다.

뻑하는 소리와 함께 돼지는 소리질렀고, 4촌할배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멧돼지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했던 다른 할배들도 달려들어 멧돼지를 다졌고, 한 3분쯤 지났을까, 돼지는 곤죽이되어 죽어있었다.

항상 임팩트있게 나왔던 다큐멘터리속, 영화속 멧돼지는 여기 없었다.

그저 200근정도 나오는 돼지고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6촌 할배는 조상님들이 벌초끝냈다고 보내주신 상이라며 돼지를 가져다가 먹자고 하셨다.

이에 우리는 돼지를 경운기에 싣고 내려와 6촌 할배네 동네로 갔고, 도살자를 불러다가 돼지를 썰어 동네 잔치를 벌였다.

이 날 멧돼지 고기를 처음 먹어봤는데, 지방질이 마치 소고기의 차돌박이처럼 쫀득하고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저녁 늦게, 선산 아래의 마을 이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멧돼지 잡았다던데 그거 먹으면 안된다는 전화였다.

그러나 먹은진 오래고 벌써 소화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이장의 얘기는 이랬다. 옛날부터 선산에 멧돼지가 있었는데, 그게 먹을게 별로 없어서 못커서 그렇지 사실은 나이가

꽤나 되는 멧돼지란다. 근데 염소치기 할배가 죽은다음에 발견됬을때, 멧돼지가 할배 시신을 파먹은 후였더란다.

그 당시에는 뭐 돼지새끼가 그럴수도 있지 하면서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시신을 화장했는데, 멧돼지가 사람한테 달려들줄은 몰랐다고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우리는 남은 멧돼지 고기를 태워버렸고, 서둘러 동네 당집에 찾아가 굿을 부탁해야한다고 했다.

한밤중에 어디선가 무당을 모셔와 시작된 굿판은 새벽녘에야 끝나게되었고, 뭔가 찝찝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지만

아버지와 나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

그리고 한달후

아버지는 멧돼지 고기가 너무 맛있었다고 멧돼지를 먹으러가자고 하셨다.

 

 

 

출처 : il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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